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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태국 선교 다섯 번째 이야기(버스 안에서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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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972회 작성일 03-09-1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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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선교 그 다섯 번째 이야기(버스 안의 묵상)

'성령을 구함', '성령의 임재하심', 그리고 '성령께 내어 맡김' 이 세 가지는 태국 집회 때마다 내가 가장 많이 기도했던 기도 제목이고, 가장 많이 묵상하게 되는 내용이다. 마침 버스 안에서 생각을 느낌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닿아, '필'이 꼿혀 있을 때 정리해본다.

믿고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우리를 향한 굳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에 난 의심 없이 성령을 구한다. '성령을 구한다'라는 나의 행위는 무엇일까...

말 그 자체는 내가 내 의지대로 신(성령)을 내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 같다. 마치 내가 주권자인 듯한 말이다. 하지만 내 안에서의 느낌은 분명히 다르다. 이건 절대 내가 주체가 아니다. 나의 원함과 필요에 따라 내가 주체가 되어 신을 움직이는 그런 행위가 아니라, 중심 생각은 신의 임재하심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중요한 점이 성령을 구하는 "나의 행위"에 있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나로 하여금 성령을 구하게 하며 그 모든 섭리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에 더 깊은 강조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다 준비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성령을 구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그 임재하심을 받아들이겠다는 나의 의지의 표현이며, 그 임재하신 성령을 느끼고 그 성령의 원하심에 순종하겠다는 나의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내가 성령을 구한다는 것은 모두 삼위일체 하나님의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섭리 가운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누가 주체인가를 따지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내 기독신앙이 인본이 아니라 신본임을 밝혀서, 태국인들이 불러들이는 예술의 신과 같은 잡신의 계열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구분해 놓고 싶은 마음에서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러서 달래서 우리 맘대로 어찌어찌 해 볼 수 있는 그런 잡신과는 아예 그 비교 대상이 되질 않는다.

따라서, 내가 성령을 구하는 것이, 마치 내가 적들보다(태국의 잡신, 제도, 성령을 방해하는 악의 세력) 훨씬 우수한 무기를 얻어서, 내 힘으로 그 무기를 가지고 피가 철철나는 혈전을 치루는 그러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 주께서 미리 계획하시고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코자하신 그 계획을, 그 뜻 안에서 그저 담담히 순종해가며 이루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 이긴 전쟁이라도, 다 끝이 훤히 보이는 전쟁이라도 수행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성령을 구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러한 것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하나님께 내어 맡김" 이라는 행위는 나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왠지 "내어 맡긴다"라는 말은 굉장히 수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이 말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말이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내 모든 의지를 주께 드린다는 것인데, 쉽게 말해서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 들린다. 즉, 하나님 섭리 가운데 임재하신 성령의 뜻을 인지하고, 느껴서 성령께서 원하시는 일만을 하겠다는, 성령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어 내고야 말겠다는 목숨을 건 처절한 몸부림이다.

따라서 "은혜받은 감동의 포즈로 손놓고 뒷짐지는, 뒤로 물러난 수동적인 행위 이기 보다는, 내 안의 자유의지로 내 맘대로 하고자하는 자유의지를 꺾어서 주께 드리는 그런 행위이다.  내 죄된 본성과 싸워서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만을 하겠다는 몸부림이 바로 "주께 내어 맡김" 이 아닐까.

어제는 몰에서 집회 할 때 첫 날에 보이지 않았던 더 많은 것들이 내 눈 안에 들어왔다. 쇼핑객들이 우리를 향해 보이는 시큰둥한 모습(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찬양을 들어도 우리 기대처럼 결코 변화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 우리 찬양과는 상관없이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 특히 내가 좋아하는 TV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축구 경기까지... 다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성령께 나를 내어 맡긴다는 것은, 내 의지대로 내가 하고픈 대로 시큰둥한 사람들을 향해 서운한 눈빛을 보낸다거나, 누가 결승 골을 넣을 것인가를 집중하며 TV를 시청하는 것이 아닌, 이러한 내 모든 의지를 내 의지로 꺾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만 집중하여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어야겠다는 내 몸부림이다.

TV속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보듯이, 개그맨들이 개그를 할때 자신들이 먼저 웃어버리면, 그 개그는 빵점짜리가 된다. 담담하게 시청자들이나 방청객들의 웃음을 이끌어 낸 후에야 여유있게 웃음으로 화답하며 또 다른 웃음으로 연결하는 개그맨이 진짜 개그맨이다. 그 개그맨들의 개인 사정을 알 수가 없다. 방금 초상을 치루고 왔는지, 애인과 헤어졌는지, 동료와 싸웠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관객들을 결국 웃기고야 만다. 프로인 것이다.

집회때마다 성령께서 감당하기 어려운 감동을 주신다. 그리고 그 감동은 곧잘 눈물과 연결되는데, 이때 하나님께 내어 맡긴다는 것은, 주신 감동을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며 내 개인적인 일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즉, 감동이 커서 내가 하고픈 대로 눈물로 울컥하면서 찬양을 못 드림이 아니라, 그 감동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꾹꾹 참아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주의 복음의 메시지를 화음에 담아서 보내는 것이 바로 내어맡김이다. 감정이 흐르는 대로 손놓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가 흘리는 눈물에 보는 이들이 감동할 수 있겠지만, 그런 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부족하게 한 행동을 성령께서 메우신 행동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우리가 눈물을 흘려서 주의 뜻이 이루어 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은혜주시는 대로, 감동대로 하나님께 맡겨라"라는 말은 내게 너무도 조심스러운 말이다.

하기야, 나 역시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해서 내내 울기만 했으니, 참 한심하다. 이런 현상은 나 같은 '초'자 대원들에게 많이 일어난 것 같다. 경험 많은 대원들, 특히 늘 곁에서 지켜 볼 수 있는 순호씨나, 광선형은 깊은 감동 속에서도 혹시 내가 음이나 잃어버리지 않을까 묵묵히 자신의 소리를 내게, 어떨 때는 일부러 내 쪽을 향하여 전해준다. 프로다.

자신의 본성, 흐르는 마음을 이기기란 정말 어렵다. 이곳 태국 집회때 첫 어려움은 비행기 안에서였다. 난 대한 항공에서 준 담요를 가져오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목사님은 단 한마디로 "안돼"라고 말씀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순간에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수도 없이 툴툴 거리고 난 후에야 그 마음을 접을 수 있었고, 나 말고 다른 대원이 담요를 가지고 온 것을 본 후에는 그 마음이 다시 살아나서 또다시 몇 번이고 툴툴댔다. 하지만 다 지난 이야기...  내어 맡긴다는 말은 내게 버거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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