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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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성경공부를 시작한 이후에 달라진 것이라면, 지금껏 노상 내가복음으로 일관되어 왔던 발상과 생각 그리고 실천하는 것들이 그 본래의 의미로(영적인 뜻) 점차 이관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라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반면 또 한가지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중 하나는,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며 오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믿음의 선배들과의 대화가 막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교회에서 한 성경 하신다고 자부하며 방언으로 기도하고 계시는 것을 직접 표현은 않하고 있으나, 무척이나 자부심으로 자랑으로 - 따라해봐 ! 나 처럼 못하지(가스비를 아끼려면!! 하면서,,,,) - 생각하는 분들과의 대화가 차츰 어렵고 쑥스러운 국면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근데, 또 한가지 복통칠 노릇은, 믿음에 대한 예화를 통해서 서로의 간증을 이야기 하는 것 까진 좋았는데 대개가 예배당 안에서 서로가 뜨거워 진 나머지 함께 통성으로 한번 뜨겁게 기도하자고 해 놓고는, 그만 자기만의 담대하고도 확성기 달아 놓은 듯한 기차 화통 소리를 내며 큰소리로 기도하는 목소리에 질려,
난 도대체 한마디도 못한 채 마지막 아멘만 하고 일어서려는 순간, 그토록 커다란 목소리로 질리게 만든 분이 하는 말 왈 ! '' 예!! 이제 다 잘 될 겁니다 '' !?%#$ 를 당한 경우, 혹시 여러분은없는가요?
그렇다면 나 자신은 그런 환경 속에서 그냥 그려러니 하며 슬쩍 모르는 척넘어 가버리는 것이 최선책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조리있게 상대방이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는 한도내에서 주의해 가며 때로는 유모어도 겯들여 가며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인지?
전자를 실천하려니 창조주 하나님께 왠지,,,,,하는 찝찝한 느낌만 들고,,,, 후자로 하려니 도무지 어디서 부터 어떻게 건들여 이 야그를 진행시킴이 마땅할지 감이 오질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 여러분 태초에 의 태초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부터 시작하려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 아니겠습니까? 설령 시간이 허락되어 잠시 성경을 펼쳐가며 참 조리있고도 있는 그대로 설명을 잘 했다고 스스로 판단할 땐, 대체적으로 상대방과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지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혹시,, 신학교 중퇴 하셨어요?? 어쩌면 그렇게 청산유수에요? ''하는 꽈배기 핀잔 말입니다.
어느날,,
Q,T는 생명의 양식과도 같으니까 반드시 실천하셔야 합니다. 라며 까진 좋았는데 하필 그날 Q,T 과제로 결려든 성경 말씀이 바로 ' 유대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잡아와 예수님 앞으로 끌고 나온 ' 그 장면이었다 말입니다. 그리곤, 여러분은 어떻게 하여 이 성경 본문 말씀을 갖고 내 생활에 적용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이라면,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고 내 생활에 적용 실천 하시겠습니까?
나도 간음하지 말아야 겠다? 아니면, 그냥 죄를 지으면 예수님 앞으로 끌려가니 죄를 짓지 않도록 유의해야 겠다? 그것도 아니면, 지금껏 간음 죄를 범했던 것들 모조리 끄집어 내어 몽땅 고백해야 한다?
디모데후서 1장8절 말씀이 또 생각납니다. ,,,,,,,,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니 나 원 참,
겨우 복음다운 복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이젠 고난을 받으랍니다.
진지한 대화가 필요한 때 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솔하고도 진지하게 경청하는 귀가 열려져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듣고 나선 깨닫고 스스로의 생각과 식견으로 인정하는 자세가 꼭 필요한 때라 이 연사는 힘차게 외칩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 세족식 장면을 읽고는 [오직 우리도 이 처럼 낮은 자리에서 무릎꿇고 먼저 섬겨야 함이 마땅한 것입니다] 라고 열변으로 토하며 주장하고 계시는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는다면 계속 겸손하게 발만 씻겨 주고 한편 발을 내민 사람은 감동 된다고 하여 울고 마는 그런 퍼포먼스만 행하게 방치하고 마는 결과가 될 것 같습니다.
진실한 대화가 아주 절실하게도 필요합니다. 그 13장을 늘 대하면서도 4절 이후 그저 9절 정도까지만 읽고는 내가 복음으로 바뀌어지고 말았던 - 지금껏 그렇게만 생각해 왔으니까 섬겨야 한다는 말씀에 한번도 의심을 작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 - 현실.
조금만 더 정독하고 20절 까지만 갔어도 결론이 바로 적혀 있는데 왜 지금까진 그걸 발견을 못한 채 얼버무리고 말았던지. 참 수수께끼 갖기도 하고 기가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슴을 인정합니다.
이제 겨우 무교절 정도의 수준으로 지키고 있는 내 자신이 이정도 밖에 안되니 더 나아가서 맥추절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 된다고 가정하면, 도저히 나 이외 내 주변의 그 어떤 사람들과의 대화가 순조로와 질 것이라는 기대는 애시당초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민과 번민의 연속입니다. 이럴땐 그져 깊은 산골 절에 들어가 조용히 성경 보면서 묵상하고 기도한다면 ??!#$%^,,
정말 대화가 필요합니다. 대화는 대체로 말을 하는 것이 주체가 되어 대화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꼭 필요한 것은 듣고 깨닫고 스스로 인정하고 그 쪽 길로 돌아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 질문입니다. 이것도 대화중에 막힌 부분입니다.
창세기 1장에 주욱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역이 등장하지요. 그리고 2장은 그 창조하신 구원의 원리를 부연설명하고 계시는 장면이지요. 그렇다면 3장에서 그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 아담과 하와의 불쌍한 퇴출 모습을 보게 되는데 . 그런데 그 사탄은 언제 창조하셨나요?
다시말씀드려서, 창조한 내역은 1장에만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 만드신 타이밍이 언제였던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날 부터 여섯째날까지 중에서,,, ??? 혹시 또 다시 깨닫지 못하고 놓치고 있는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다면 속히 가르쳐 주십시오. (의외로 간단한 답일지도,,,,)
끝.
사실이다. 심지어 교회에서 한 성경 하신다고 자부하며 방언으로 기도하고 계시는 것을 직접 표현은 않하고 있으나, 무척이나 자부심으로 자랑으로 - 따라해봐 ! 나 처럼 못하지(가스비를 아끼려면!! 하면서,,,,) - 생각하는 분들과의 대화가 차츰 어렵고 쑥스러운 국면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근데, 또 한가지 복통칠 노릇은, 믿음에 대한 예화를 통해서 서로의 간증을 이야기 하는 것 까진 좋았는데 대개가 예배당 안에서 서로가 뜨거워 진 나머지 함께 통성으로 한번 뜨겁게 기도하자고 해 놓고는, 그만 자기만의 담대하고도 확성기 달아 놓은 듯한 기차 화통 소리를 내며 큰소리로 기도하는 목소리에 질려,
난 도대체 한마디도 못한 채 마지막 아멘만 하고 일어서려는 순간, 그토록 커다란 목소리로 질리게 만든 분이 하는 말 왈 ! '' 예!! 이제 다 잘 될 겁니다 '' !?%#$ 를 당한 경우, 혹시 여러분은없는가요?
그렇다면 나 자신은 그런 환경 속에서 그냥 그려러니 하며 슬쩍 모르는 척넘어 가버리는 것이 최선책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조리있게 상대방이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는 한도내에서 주의해 가며 때로는 유모어도 겯들여 가며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인지?
전자를 실천하려니 창조주 하나님께 왠지,,,,,하는 찝찝한 느낌만 들고,,,, 후자로 하려니 도무지 어디서 부터 어떻게 건들여 이 야그를 진행시킴이 마땅할지 감이 오질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 여러분 태초에 의 태초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부터 시작하려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 아니겠습니까? 설령 시간이 허락되어 잠시 성경을 펼쳐가며 참 조리있고도 있는 그대로 설명을 잘 했다고 스스로 판단할 땐, 대체적으로 상대방과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지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혹시,, 신학교 중퇴 하셨어요?? 어쩌면 그렇게 청산유수에요? ''하는 꽈배기 핀잔 말입니다.
어느날,,
Q,T는 생명의 양식과도 같으니까 반드시 실천하셔야 합니다. 라며 까진 좋았는데 하필 그날 Q,T 과제로 결려든 성경 말씀이 바로 ' 유대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잡아와 예수님 앞으로 끌고 나온 ' 그 장면이었다 말입니다. 그리곤, 여러분은 어떻게 하여 이 성경 본문 말씀을 갖고 내 생활에 적용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이라면,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고 내 생활에 적용 실천 하시겠습니까?
나도 간음하지 말아야 겠다? 아니면, 그냥 죄를 지으면 예수님 앞으로 끌려가니 죄를 짓지 않도록 유의해야 겠다? 그것도 아니면, 지금껏 간음 죄를 범했던 것들 모조리 끄집어 내어 몽땅 고백해야 한다?
디모데후서 1장8절 말씀이 또 생각납니다. ,,,,,,,,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니 나 원 참,
겨우 복음다운 복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이젠 고난을 받으랍니다.
진지한 대화가 필요한 때 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솔하고도 진지하게 경청하는 귀가 열려져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듣고 나선 깨닫고 스스로의 생각과 식견으로 인정하는 자세가 꼭 필요한 때라 이 연사는 힘차게 외칩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 세족식 장면을 읽고는 [오직 우리도 이 처럼 낮은 자리에서 무릎꿇고 먼저 섬겨야 함이 마땅한 것입니다] 라고 열변으로 토하며 주장하고 계시는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는다면 계속 겸손하게 발만 씻겨 주고 한편 발을 내민 사람은 감동 된다고 하여 울고 마는 그런 퍼포먼스만 행하게 방치하고 마는 결과가 될 것 같습니다.
진실한 대화가 아주 절실하게도 필요합니다. 그 13장을 늘 대하면서도 4절 이후 그저 9절 정도까지만 읽고는 내가 복음으로 바뀌어지고 말았던 - 지금껏 그렇게만 생각해 왔으니까 섬겨야 한다는 말씀에 한번도 의심을 작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 - 현실.
조금만 더 정독하고 20절 까지만 갔어도 결론이 바로 적혀 있는데 왜 지금까진 그걸 발견을 못한 채 얼버무리고 말았던지. 참 수수께끼 갖기도 하고 기가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슴을 인정합니다.
이제 겨우 무교절 정도의 수준으로 지키고 있는 내 자신이 이정도 밖에 안되니 더 나아가서 맥추절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 된다고 가정하면, 도저히 나 이외 내 주변의 그 어떤 사람들과의 대화가 순조로와 질 것이라는 기대는 애시당초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민과 번민의 연속입니다. 이럴땐 그져 깊은 산골 절에 들어가 조용히 성경 보면서 묵상하고 기도한다면 ??!#$%^,,
정말 대화가 필요합니다. 대화는 대체로 말을 하는 것이 주체가 되어 대화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꼭 필요한 것은 듣고 깨닫고 스스로 인정하고 그 쪽 길로 돌아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 질문입니다. 이것도 대화중에 막힌 부분입니다.
창세기 1장에 주욱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역이 등장하지요. 그리고 2장은 그 창조하신 구원의 원리를 부연설명하고 계시는 장면이지요. 그렇다면 3장에서 그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 아담과 하와의 불쌍한 퇴출 모습을 보게 되는데 . 그런데 그 사탄은 언제 창조하셨나요?
다시말씀드려서, 창조한 내역은 1장에만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 만드신 타이밍이 언제였던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날 부터 여섯째날까지 중에서,,, ??? 혹시 또 다시 깨닫지 못하고 놓치고 있는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다면 속히 가르쳐 주십시오. (의외로 간단한 답일지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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