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칼한 간음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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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7-11-04 23:16 조회 5,823 댓글 0본문
에바다표 성경공부를 하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비교적 귀가 솔깃해 지고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이 있다. 졸음이 쏟아져 오다가도 눈 꺼풀이 가볍게 느껴지며 갑자기 메모리가 짱짱 돌아가는 시간은 역시 성경속의 간음 사건을 설명하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신앙 생활을 해 오면서 이처럼 진지하고도 심층적인 연구를 해 본 적도, 내지는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별로 들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니 그냥 뭐 남녀 불문하고 예수 믿고 구원 얻으면,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혹은 결혼전이나 후에라도 바람 핀다는 것은 물론이고, 서투른 남녀간의 어수룩한 장난일랑 애시당초 저질러서는 아니된다고 하는 그 뭐라할까 일종의 우리들 가운데 보이지 않는 불문율의 법칙이 아니었겠는가?
(중략)
그런데 이미 오래전 지난 사건으로 고리타분한 느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새삼 깨우쳐 주고 있는 교훈이 있는 것 같아 깊이 생각해 보았다.
제목은 목자들의 불륜 사건과 연예인 부부의 불륜 사건에 대하여다.
성직자라고 불리우는 목사 혹은 그에 상응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불륜을 범한다면 ,,,,???
새벽재단에 나와서 몸부림 치며 절규하고 기도하는 신도들이 있는가 하면,
연예인 잉꼬 부부가 불륜으로 고소하느니 재산을 나눠애 하는니 하는 등의 얘기가 나오면 그저 흥미진진 그 자체,,,,
자 그 결과, 아니 그 최후의 심판은 과연 어떻게 될까?
요즘 이곳 한인교회내에서는 새삼스럽게도 이런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 주장이 격돌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중요한 내용인즉슨,,,,
(한편 스토리 반전을 통해 재조명해 보았다.)
어느 모 교회의 담임 목사가 글쎄 젊고 예쁘다고 소문난 충실한 여성 신도들을 대상으로 동시 다발 테러가 아닌 동시 다발 불륜(?) 아니 간통을 하였다는 혐의가 발각되어, 결국은 담당하고 있던 교회에서 추방당하고 그 교회는 공중 분해로 없어지는 최악의 상태로 가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분해되어 없어져 버린 교회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다시 그 목사는 새롭게 개척을 하며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건 이후에도 그 목사에게 충성하며 추종하고 따르고 있는 신도들이 수십여명이나 있기 때문에 영업(?) 계속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붙잡아 끌고 온 유대인들과 한판 승부에서 깨끗한 판정승으로 그 간음한 여인을 해방시켜 주시는 장면을 우리는 명료하게 읽어 볼 수 있었다. 또한 다윗과 밧세바 사건이나 그외에도 많이 등장하는 간음으로 사건을 일으킨 장면을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너희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신 죄에 대한 말씀의 개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그 간음 사건으로 총회 재판부에서 청문회까지 거친 그 목사는 끝까지 자신의 결백에는 잘못됨이 없으며 해당 여성들이 조작한 것이다 하며, 나중엔 별일 없었던 것 처럼 근처에서 양치기 영업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과연 어디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목사라는 신분의 간통사건 진실과 잉꼬 부부라고 소문난 연예인 부부의 간통사건의 진실 게임의 결말은 어디로 이어져 갈 것인가? 그 두 종류의 간음사건의 차이는 무엇인가?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우리가 그 사건의 현장 중심에 서 있었던 유대인의 신분이었다고 한다면, 과연 그 죽일 놈의 목사라고 낙인 찍힌 자를 향해 돌을 집어 들 수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 목사 자신이 철저히 분석하고 100% 믿고 있었던 것 중에는 결국 죄라는 개념, - 공부한 것을 토대로 본다면, 자신은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죄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대의 명분 - 으로서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죄와 인정하지 못하는 죄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알 고 그런 짓을 범했는지도 모르겠다.
발상을 한번 확!! 전환하여 전혀 맹랑한 귀납적인 전제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목사라고 하는 직업은 성직자이니까 혹은 목자라고 하는 소위 양떼와 양치기 목자의 관계속에서 정리된 생각속에서는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상식적으로,,,,당연지사 있을수도, 내지는 있어서는 아니될 사건이라고 단언할 수 있으며, 그 목사 걔는 인간도 아닝께 하며 죽일 놈이
아닌가 하며 정죄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한편 그 사건의 상대방이라고 할 수 있으며 피해자라고 자칭 타칭 불리우는 젊은 여성들의 죄 값은 어떻게 산출 될 수 있을 것인가?
단순 피해자라는 신분으로 해당 파출소에서 조서만 꾸미면 끝나는 것인가? 결국 화살은 그 목사를 향해 날라간 것이고 우리는 그 화살을 맞아 고통 받아 당연한 목사의 모습을 멀끄러미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인가?
죄! 죄란 과연 무엇인가?
내가 내 마음대로 필요에 따라, 내 편한대로 경우에 맞추어, 내 사는 형편에 맞추어,
그때 그때 달라요 하며 바꿔서 내거는 간판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모순된 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던 기본적인 십계명의 첫번째 계명 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내 형편을 알뜰하게도 잊어 버린채,,, 내가 아닌 남들이 지은 죄를 향해서 손가락 질 하며 천하의 못된 놈이라 지정하고 씩씩대며 열받은 모습으로 말이다.
연예인 부부의 결말을 지켜 보면서 그러게 내가 말앴지,, 쌀 세가마 먹기도 전에 헤어질거라구,, 라고 하는 의미 없는 수다만 지껄이는 내 모습을 거울에 한번 반사시켜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다.
인간 세상에서 인간들이 저지른 추악한 죄를 향해서 똑 같은 인간인 내 자신이 자신만만 돌을 집어 던질 자격이 있는 자인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사건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참된 구원이라는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부자이며 건방지지만 영생에 대해서 유일하게 질문을 던진 그 부자 청년이 부럽기만 하다. 지금 현재 내가 예수 믿는 자로서 엄청난 부자라고 한다면, 적어도 그런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며 말이다. 짜식 ! 주식만 좀 냉겨 두고 그냥 다 내놓겠다고 했으면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일년치 영생의 티켓을 미리 끊어 주셨을 텐데,,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죄 없는 자란 도대체 어떤 자이길래 이토록 힘든 것인가?
도대체 참된 구원 받은 자의 행렬에 참여한다는 것이란 어떻게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인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해 주실것이라는 말씀을, 말씀이 적혀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될 수 있는 때는 과연 언제나 오려는지.
늘 항상 구속만 받으며 기도해야 할텐데,,말씀대로 살아야 할텐대,, 빨리 돈 많이 벌어 구제도 많이 해야 하는데 하는 푸념만 하고 살 수 밖에 없는 내 자신 모습이 과연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지금의 바램은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지적하고 계시는 그 죄로 부터의 자유로움을 얻고만 싶을 뿐이다.
내일 출근 전차 안에서는 절대로 뒷모습이 기똥찬 여자에게 눈 돌리는 죄를 범해서는 안되겠다.
부분이 있다. 졸음이 쏟아져 오다가도 눈 꺼풀이 가볍게 느껴지며 갑자기 메모리가 짱짱 돌아가는 시간은 역시 성경속의 간음 사건을 설명하는 시간이 아닌가 싶다.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신앙 생활을 해 오면서 이처럼 진지하고도 심층적인 연구를 해 본 적도, 내지는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별로 들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니 그냥 뭐 남녀 불문하고 예수 믿고 구원 얻으면,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혹은 결혼전이나 후에라도 바람 핀다는 것은 물론이고, 서투른 남녀간의 어수룩한 장난일랑 애시당초 저질러서는 아니된다고 하는 그 뭐라할까 일종의 우리들 가운데 보이지 않는 불문율의 법칙이 아니었겠는가?
(중략)
그런데 이미 오래전 지난 사건으로 고리타분한 느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새삼 깨우쳐 주고 있는 교훈이 있는 것 같아 깊이 생각해 보았다.
제목은 목자들의 불륜 사건과 연예인 부부의 불륜 사건에 대하여다.
성직자라고 불리우는 목사 혹은 그에 상응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불륜을 범한다면 ,,,,???
새벽재단에 나와서 몸부림 치며 절규하고 기도하는 신도들이 있는가 하면,
연예인 잉꼬 부부가 불륜으로 고소하느니 재산을 나눠애 하는니 하는 등의 얘기가 나오면 그저 흥미진진 그 자체,,,,
자 그 결과, 아니 그 최후의 심판은 과연 어떻게 될까?
요즘 이곳 한인교회내에서는 새삼스럽게도 이런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 주장이 격돌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중요한 내용인즉슨,,,,
(한편 스토리 반전을 통해 재조명해 보았다.)
어느 모 교회의 담임 목사가 글쎄 젊고 예쁘다고 소문난 충실한 여성 신도들을 대상으로 동시 다발 테러가 아닌 동시 다발 불륜(?) 아니 간통을 하였다는 혐의가 발각되어, 결국은 담당하고 있던 교회에서 추방당하고 그 교회는 공중 분해로 없어지는 최악의 상태로 가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분해되어 없어져 버린 교회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다시 그 목사는 새롭게 개척을 하며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건 이후에도 그 목사에게 충성하며 추종하고 따르고 있는 신도들이 수십여명이나 있기 때문에 영업(?) 계속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붙잡아 끌고 온 유대인들과 한판 승부에서 깨끗한 판정승으로 그 간음한 여인을 해방시켜 주시는 장면을 우리는 명료하게 읽어 볼 수 있었다. 또한 다윗과 밧세바 사건이나 그외에도 많이 등장하는 간음으로 사건을 일으킨 장면을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너희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신 죄에 대한 말씀의 개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그 간음 사건으로 총회 재판부에서 청문회까지 거친 그 목사는 끝까지 자신의 결백에는 잘못됨이 없으며 해당 여성들이 조작한 것이다 하며, 나중엔 별일 없었던 것 처럼 근처에서 양치기 영업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과연 어디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일까?
목사라는 신분의 간통사건 진실과 잉꼬 부부라고 소문난 연예인 부부의 간통사건의 진실 게임의 결말은 어디로 이어져 갈 것인가? 그 두 종류의 간음사건의 차이는 무엇인가?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우리가 그 사건의 현장 중심에 서 있었던 유대인의 신분이었다고 한다면, 과연 그 죽일 놈의 목사라고 낙인 찍힌 자를 향해 돌을 집어 들 수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 목사 자신이 철저히 분석하고 100% 믿고 있었던 것 중에는 결국 죄라는 개념, - 공부한 것을 토대로 본다면, 자신은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죄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대의 명분 - 으로서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죄와 인정하지 못하는 죄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알 고 그런 짓을 범했는지도 모르겠다.
발상을 한번 확!! 전환하여 전혀 맹랑한 귀납적인 전제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목사라고 하는 직업은 성직자이니까 혹은 목자라고 하는 소위 양떼와 양치기 목자의 관계속에서 정리된 생각속에서는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상식적으로,,,,당연지사 있을수도, 내지는 있어서는 아니될 사건이라고 단언할 수 있으며, 그 목사 걔는 인간도 아닝께 하며 죽일 놈이
아닌가 하며 정죄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한편 그 사건의 상대방이라고 할 수 있으며 피해자라고 자칭 타칭 불리우는 젊은 여성들의 죄 값은 어떻게 산출 될 수 있을 것인가?
단순 피해자라는 신분으로 해당 파출소에서 조서만 꾸미면 끝나는 것인가? 결국 화살은 그 목사를 향해 날라간 것이고 우리는 그 화살을 맞아 고통 받아 당연한 목사의 모습을 멀끄러미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인가?
죄! 죄란 과연 무엇인가?
내가 내 마음대로 필요에 따라, 내 편한대로 경우에 맞추어, 내 사는 형편에 맞추어,
그때 그때 달라요 하며 바꿔서 내거는 간판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모순된 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던 기본적인 십계명의 첫번째 계명 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내 형편을 알뜰하게도 잊어 버린채,,, 내가 아닌 남들이 지은 죄를 향해서 손가락 질 하며 천하의 못된 놈이라 지정하고 씩씩대며 열받은 모습으로 말이다.
연예인 부부의 결말을 지켜 보면서 그러게 내가 말앴지,, 쌀 세가마 먹기도 전에 헤어질거라구,, 라고 하는 의미 없는 수다만 지껄이는 내 모습을 거울에 한번 반사시켜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다.
인간 세상에서 인간들이 저지른 추악한 죄를 향해서 똑 같은 인간인 내 자신이 자신만만 돌을 집어 던질 자격이 있는 자인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사건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참된 구원이라는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부자이며 건방지지만 영생에 대해서 유일하게 질문을 던진 그 부자 청년이 부럽기만 하다. 지금 현재 내가 예수 믿는 자로서 엄청난 부자라고 한다면, 적어도 그런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며 말이다. 짜식 ! 주식만 좀 냉겨 두고 그냥 다 내놓겠다고 했으면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일년치 영생의 티켓을 미리 끊어 주셨을 텐데,,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죄 없는 자란 도대체 어떤 자이길래 이토록 힘든 것인가?
도대체 참된 구원 받은 자의 행렬에 참여한다는 것이란 어떻게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인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해 주실것이라는 말씀을, 말씀이 적혀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될 수 있는 때는 과연 언제나 오려는지.
늘 항상 구속만 받으며 기도해야 할텐데,,말씀대로 살아야 할텐대,, 빨리 돈 많이 벌어 구제도 많이 해야 하는데 하는 푸념만 하고 살 수 밖에 없는 내 자신 모습이 과연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지금의 바램은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지적하고 계시는 그 죄로 부터의 자유로움을 얻고만 싶을 뿐이다.
내일 출근 전차 안에서는 절대로 뒷모습이 기똥찬 여자에게 눈 돌리는 죄를 범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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