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없는 천국에서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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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없는 천국에서 만나리라!
조남홍 목사 / 교회문제연구소 소장
한낮에 서울에서 걸려 온 국제전화는 병원에 입원 중이신 장인 어른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소식이었다. 의료적인 모든 수단을 다한 다음에 의사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고 오늘 밤을 넘기기가 힘들 것이니 가족들을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장인 어른께서는 그 동안 일년 이상 투석(透析) 치료를 받아 오셨다. 마침 미국에 있던 손자들까지 방학을 맞이하여 한국으로 다 들어갔고 중국에 있는 처남도 비행기 표를 구했다는 소식이었으나 정작 미국에 있는 우리 식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금년 여름에 한국에서 모이는 회의에 참석하고 찾아뵐 계획이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가는 것을 포기하고 있던 차였다. 경황 중에 겨우 시카코를 거쳐 서울로 들어가는 비행기표 하나는 구할 수가 있었다. 성수기이기 때문에 비싸긴 했지만 둘이 다 갈 수가 없어서 아내를 보내게 되었다. 부음을 듣고도 한국에 여러 가지 이유로 들어갈 수 없는 이민자들을 그 동안에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에 다소나마 그들의 마음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장례 중 논란이 된 십일조 문제
그런데 서울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식구들이 모여 여러 가지 절차와 돌아가신 후의 일들을 의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한 자리에서 예사롭지 않은 일이 생겼다. 교회 권사인 큰 처제가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약속하신 십일조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 마디 한 모양이다. 그래서 가벼운 입씨름이 오간 모양이다. 장인 어른의 생활과 수입은 가장 가까이에서 사는 막내 처제네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어른을 설득하여 힘들다고 하는 간호 시설(Assisted living facilities)에 입원시켜 드렸고, 어른은 지난 일년간을 간호를 받으시면서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지내셨다. 들어가는 비용에서 모자라는 부분은 고맙게도 막내 처제네가 부담을 지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시설에 들어가시기 전에 큰 처제와 약속을 하신 모양이었다. 이제라도 십일조를 하시면서 하나님 앞에 가실 준비를 하시라고 말이다. 언제 누구와 약속하셨는지는 몰라도 안 봐도 짐작이 가는 것은 큰 처제의 강권에 그저 대답을 하셨던 것 같다.
권사인 큰 처제는 적극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기 동생에게 그 동안 어른을 대신해서 십일조를 하였는지 묻고 안 했으면 돌아가시기 전에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단다. 말라기서 3장까지 들먹이면서 하나님 앞에 가서 상급이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했다는 것이다.
막내 처제 역시 소위 십일조 교인이다. 그런데 그는 대답하기를 임종을 앞두고 그러한 논의는 마땅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 시기를 다툴 만한 그러한 문제도 아니요, 돌아가신 후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며 지금 그것보다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임종하시기 전에 그렇게 십일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강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상식을 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병원에 들어가는 비용이 모자라서 부담을 감당하고 있는 형편인데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식으로서 아버지가 상급을 받으시는 일이라면 돌아가시기 전에라도 하겠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아니요 어른을 위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집안에 목사가 하나뿐이므로 아무튼 필자는 무언가 말을 해 주어야 할 입장에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을 십일조 하고 안하고 때문에 벌(罰)이나 주시는 옹졸한 할아버지로 만들지 말라”고 전하라고 했다. 형제끼리 십일조 문제로 입씨름 하는 것보다 서로 위하고 사랑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요, 그러한 문제로 입씨름 하는 것은 어른도 원치 않고, 하나님도 원치 않으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순간에 무엇 하기를 원하실까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기도하고 찬송하며 하나님께서 어른을 이 땅에 보내시고 지나간 날들의 삶을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또한 믿음으로 보내드릴 수 있게 기도해야 하는 시간들이기 때문이었다.
율법적인 십일조는 목회자들이 잘못 가르친 결과
생각은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 집안만의 일이 아니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이들로 하여금 임종 앞에서까지 그러한 생각을 갖도록 원인을 제공했을까?” 그 책임은 필자와 같은 목회자나, 교회가 져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필자가 십일조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십일조에 대하여 교회는 무언가 잘못 가르쳐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십일조에 대한 율법적인 태도, 그것은 우리와 같은 교역자들이 잘못 가르친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교인들이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나 바치려고 하는 마음은 탓할 수 없다. 갸륵한 마음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복과 맞바꾸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야말로 기복신앙이요 주술신앙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옷만 바꾸어 입었지 기복종교나 미신행위와 다름 없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무슨 복이 더 필요한가? 구원 받은 백성들이 아닌가? 그래서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구속 받은 백성이라는 어마어마한 축복보다는 그 외의 축복이 복인줄 알고 있다. 자녀의 복, 물질의 복, 명예의 복….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도 누가 뭐했고, 누가 무슨 복을 받았고, 누가 진급했고 라는 광고를 누가 예수 믿어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보다 더 많이 한다. 그리고 언제 나에게 그러한 복이 떨어질까 그 날을 위하여 기도하며 철야하며 예언기도까지 받는다. 받은 복을 누리기는 커녕 언젠가 복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 같다.
우리네 신앙생활에서 십일조는 이미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재는 척도가 되었으며, 헌신하는 자인가 아닌가의 기준이 되어 있다. 십일조는 이미 복음 위에 군림하고 있으며 교회는 이미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율법”을 지킬 것을 설교하고 있다. 그것이 엄청난 축복을 가져다 주는 마술로 가르치고 있으며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녀가 잘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다. 물질이 들어올 수도 있고, 안 들어올 수도 있다. 명예를 얻을 수도 있고 못 얻을 수도 있다. 일이 잘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구속의 은총을 복으로 알고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사랑 주셨던 어른들께 드릴 것은 감사뿐..천국에서 다시 뵙길
다시 서울에서 걸려 온 처제의 전화. 어른께서 이미 돌아가셨고 언니에게는 아직 혼수 상태에 계시다는 말만 전했었다고 말하는 순간 처제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그것도 모르고 아내는 공항에 도착하여 서울로 들어가면서 전화를 했다. “이미 돌아가셨어요.” 수 년 전에 뵙고 그 동안 뵙질 못했다. 처가 부모도 친가 부모도 우리 부부는 똑같이 섬기려고 애써왔다. 그리고 아내도 아예 시부모를 아버지 어머니로, 딸이 부모에게 하는 것처럼 했고, 필자도 어른들을 아예 어머니 아버지로 불렀다. 어른께서는 아이들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렇게 부르는 것을 싫어하셨다. 그저 할아버지 할머니 그렇게 부르기를 원하셨고 그래서 우리도 친가 처가 가리지 않고 아버지 어머니로 불러왔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전화는 드렸지만 뵙진 못했다. 일년간이나 편찮은 상태에 계셨지만 가 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에 임종도 뵙지 못하고 혼자 남았다는 생각에 그저 죄송한 마음 뿐이었다. 역시 선대는 후대를 위해 희생하고 밀알이 되고 마는구나! 딸을 목사에게 시집을 보내 놓고 어떠한 마음이셨을까? 사위될 사람을 만나고 돌아온 날 피식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약은 고양이가 눈 멀다고 하더니만, 그 좋은 자리 다 내놓고 목사에게 가네…” 하셨다고 했다. 결혼 후에도 만나뵐 때마다 “이런 목사 되지 말게 하시면서 교회의 잘못으로 인하여 목회자의 이름이 신문에 거론될 때마다 당신의 일인 양 혀를 차면서 목사 사위 둔 죄로 마음앓이를 하시던 어른…. 갈 때마다 목사의 가정이 어려운 줄 아시고 사위 몰래 딸에게 적지 않은 생활비를 건네시던 어른….
장모님은 한번도 사위를 자네라고 부르시지 않았다. 반드시 우리 목사님으로 부르셨고 생전에 항상 목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셨다. 우리 내외는 두 분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목사이기 때문에 사랑받은 것이다. 그 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목회자를 사랑하시고 도와주시던 분들이다. 아니 아예 서울에 있는 당신의 집에 살 수 있도록 해 주셨던 분들이다. 부산에 계실 때도 다른 목회자에게 집을 내어주셨던 분들이다. 목사의 생활을 아시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그래서 큰 아이도 그 집에서, 작은 아이도 그 집에서 태어났다. 당신 자신이 제주도에서 처음 예수를 믿다가 쫓겨나신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모두 신앙생활을 잘 하셨고, 장로님과 권사님으로 사셨으며 90이 넘도록 사신 권사님은 환갑이 넘은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시며 집에 마련해 놓은 다락방에서 날마다 기도하시며 성경을 외우시던 어머니의 아들이셨기에 어려서부터 믿음이 흘러내려온 가정이었다. 못나서 처가 신세를 많이 지고 살아온 변변치 못한 자신을 생각하며 속 깊은 어른을 부모로 모실 수 있었던 지난 날을 감사한다.
가끔 아내와 농담으로 “처가 덕을 보는 사람도 많던데…” 하면 “아내는 당신이야말로 처가 덕을 얼마나 많이 본 사람인데 그런 소리 하시우” 한다. “뭘 봤는데?”하고 물으면, “아니 이런 딸을 데려가구서도 덕을 안 봤다고 해요?” 하는 대답에 아무 말도 못하곤 한다. 따지고 보면 데려다가 목회 한다고 갖은 고생 다 시켰고 오지 않겠다던 미국까지 데려와 참 고생을 많이 시키고 있다. 그러니 참으로 할 말이 없다. 어른은 참으로 복이 많으신 분이다. 셋째를 제외하고 다섯 남매가 모두 모여 와서 임종을 지켜 보았고 많은 그들이 다 가정을 이루었으니 그 식구들이며 직장과 교회 식구들 그리고 친척들로 영결예배는 서울에서부터 속초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축제 분위기와 같았다고 전하며 아내는 전화에서 이렇게 말하며 만족해 했다.
“아버지가 완전히 꽃 속에서 파묻혀 가셨어요. 그리고 엄마와 합장을 했어요.” 그리고 며칠 후 아내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어제 형제 자매들이 다 모여 회의를 했는데 모든 일들이 잘 처리되었고 모두가 행복해 했어요.” 어른의 가족이 하나가 되어 사랑 받은 것을 깊이 감사한다. 또한 주님 앞에 다시 만날 날을 바라보며 어른의 생애와 삶을 주님께 감사드린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그 때까지 함께 계심 바라네…”(아멘)
조남홍 목사 / 교회문제연구소 소장
한낮에 서울에서 걸려 온 국제전화는 병원에 입원 중이신 장인 어른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소식이었다. 의료적인 모든 수단을 다한 다음에 의사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고 오늘 밤을 넘기기가 힘들 것이니 가족들을 부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장인 어른께서는 그 동안 일년 이상 투석(透析) 치료를 받아 오셨다. 마침 미국에 있던 손자들까지 방학을 맞이하여 한국으로 다 들어갔고 중국에 있는 처남도 비행기 표를 구했다는 소식이었으나 정작 미국에 있는 우리 식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금년 여름에 한국에서 모이는 회의에 참석하고 찾아뵐 계획이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가는 것을 포기하고 있던 차였다. 경황 중에 겨우 시카코를 거쳐 서울로 들어가는 비행기표 하나는 구할 수가 있었다. 성수기이기 때문에 비싸긴 했지만 둘이 다 갈 수가 없어서 아내를 보내게 되었다. 부음을 듣고도 한국에 여러 가지 이유로 들어갈 수 없는 이민자들을 그 동안에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에 다소나마 그들의 마음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장례 중 논란이 된 십일조 문제
그런데 서울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식구들이 모여 여러 가지 절차와 돌아가신 후의 일들을 의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한 자리에서 예사롭지 않은 일이 생겼다. 교회 권사인 큰 처제가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약속하신 십일조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 마디 한 모양이다. 그래서 가벼운 입씨름이 오간 모양이다. 장인 어른의 생활과 수입은 가장 가까이에서 사는 막내 처제네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어른을 설득하여 힘들다고 하는 간호 시설(Assisted living facilities)에 입원시켜 드렸고, 어른은 지난 일년간을 간호를 받으시면서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지내셨다. 들어가는 비용에서 모자라는 부분은 고맙게도 막내 처제네가 부담을 지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시설에 들어가시기 전에 큰 처제와 약속을 하신 모양이었다. 이제라도 십일조를 하시면서 하나님 앞에 가실 준비를 하시라고 말이다. 언제 누구와 약속하셨는지는 몰라도 안 봐도 짐작이 가는 것은 큰 처제의 강권에 그저 대답을 하셨던 것 같다.
권사인 큰 처제는 적극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기 동생에게 그 동안 어른을 대신해서 십일조를 하였는지 묻고 안 했으면 돌아가시기 전에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단다. 말라기서 3장까지 들먹이면서 하나님 앞에 가서 상급이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했다는 것이다.
막내 처제 역시 소위 십일조 교인이다. 그런데 그는 대답하기를 임종을 앞두고 그러한 논의는 마땅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 시기를 다툴 만한 그러한 문제도 아니요, 돌아가신 후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며 지금 그것보다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임종하시기 전에 그렇게 십일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강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상식을 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병원에 들어가는 비용이 모자라서 부담을 감당하고 있는 형편인데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식으로서 아버지가 상급을 받으시는 일이라면 돌아가시기 전에라도 하겠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아니요 어른을 위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집안에 목사가 하나뿐이므로 아무튼 필자는 무언가 말을 해 주어야 할 입장에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을 십일조 하고 안하고 때문에 벌(罰)이나 주시는 옹졸한 할아버지로 만들지 말라”고 전하라고 했다. 형제끼리 십일조 문제로 입씨름 하는 것보다 서로 위하고 사랑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요, 그러한 문제로 입씨름 하는 것은 어른도 원치 않고, 하나님도 원치 않으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순간에 무엇 하기를 원하실까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기도하고 찬송하며 하나님께서 어른을 이 땅에 보내시고 지나간 날들의 삶을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또한 믿음으로 보내드릴 수 있게 기도해야 하는 시간들이기 때문이었다.
율법적인 십일조는 목회자들이 잘못 가르친 결과
생각은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 집안만의 일이 아니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이들로 하여금 임종 앞에서까지 그러한 생각을 갖도록 원인을 제공했을까?” 그 책임은 필자와 같은 목회자나, 교회가 져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필자가 십일조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십일조에 대하여 교회는 무언가 잘못 가르쳐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십일조에 대한 율법적인 태도, 그것은 우리와 같은 교역자들이 잘못 가르친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교인들이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나 바치려고 하는 마음은 탓할 수 없다. 갸륵한 마음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복과 맞바꾸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야말로 기복신앙이요 주술신앙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옷만 바꾸어 입었지 기복종교나 미신행위와 다름 없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무슨 복이 더 필요한가? 구원 받은 백성들이 아닌가? 그래서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구속 받은 백성이라는 어마어마한 축복보다는 그 외의 축복이 복인줄 알고 있다. 자녀의 복, 물질의 복, 명예의 복….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도 누가 뭐했고, 누가 무슨 복을 받았고, 누가 진급했고 라는 광고를 누가 예수 믿어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보다 더 많이 한다. 그리고 언제 나에게 그러한 복이 떨어질까 그 날을 위하여 기도하며 철야하며 예언기도까지 받는다. 받은 복을 누리기는 커녕 언젠가 복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 같다.
우리네 신앙생활에서 십일조는 이미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재는 척도가 되었으며, 헌신하는 자인가 아닌가의 기준이 되어 있다. 십일조는 이미 복음 위에 군림하고 있으며 교회는 이미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율법”을 지킬 것을 설교하고 있다. 그것이 엄청난 축복을 가져다 주는 마술로 가르치고 있으며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자녀가 잘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다. 물질이 들어올 수도 있고, 안 들어올 수도 있다. 명예를 얻을 수도 있고 못 얻을 수도 있다. 일이 잘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구속의 은총을 복으로 알고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사랑 주셨던 어른들께 드릴 것은 감사뿐..천국에서 다시 뵙길
다시 서울에서 걸려 온 처제의 전화. 어른께서 이미 돌아가셨고 언니에게는 아직 혼수 상태에 계시다는 말만 전했었다고 말하는 순간 처제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그것도 모르고 아내는 공항에 도착하여 서울로 들어가면서 전화를 했다. “이미 돌아가셨어요.” 수 년 전에 뵙고 그 동안 뵙질 못했다. 처가 부모도 친가 부모도 우리 부부는 똑같이 섬기려고 애써왔다. 그리고 아내도 아예 시부모를 아버지 어머니로, 딸이 부모에게 하는 것처럼 했고, 필자도 어른들을 아예 어머니 아버지로 불렀다. 어른께서는 아이들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렇게 부르는 것을 싫어하셨다. 그저 할아버지 할머니 그렇게 부르기를 원하셨고 그래서 우리도 친가 처가 가리지 않고 아버지 어머니로 불러왔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전화는 드렸지만 뵙진 못했다. 일년간이나 편찮은 상태에 계셨지만 가 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에 임종도 뵙지 못하고 혼자 남았다는 생각에 그저 죄송한 마음 뿐이었다. 역시 선대는 후대를 위해 희생하고 밀알이 되고 마는구나! 딸을 목사에게 시집을 보내 놓고 어떠한 마음이셨을까? 사위될 사람을 만나고 돌아온 날 피식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약은 고양이가 눈 멀다고 하더니만, 그 좋은 자리 다 내놓고 목사에게 가네…” 하셨다고 했다. 결혼 후에도 만나뵐 때마다 “이런 목사 되지 말게 하시면서 교회의 잘못으로 인하여 목회자의 이름이 신문에 거론될 때마다 당신의 일인 양 혀를 차면서 목사 사위 둔 죄로 마음앓이를 하시던 어른…. 갈 때마다 목사의 가정이 어려운 줄 아시고 사위 몰래 딸에게 적지 않은 생활비를 건네시던 어른….
장모님은 한번도 사위를 자네라고 부르시지 않았다. 반드시 우리 목사님으로 부르셨고 생전에 항상 목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셨다. 우리 내외는 두 분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목사이기 때문에 사랑받은 것이다. 그 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목회자를 사랑하시고 도와주시던 분들이다. 아니 아예 서울에 있는 당신의 집에 살 수 있도록 해 주셨던 분들이다. 부산에 계실 때도 다른 목회자에게 집을 내어주셨던 분들이다. 목사의 생활을 아시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그래서 큰 아이도 그 집에서, 작은 아이도 그 집에서 태어났다. 당신 자신이 제주도에서 처음 예수를 믿다가 쫓겨나신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모두 신앙생활을 잘 하셨고, 장로님과 권사님으로 사셨으며 90이 넘도록 사신 권사님은 환갑이 넘은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시며 집에 마련해 놓은 다락방에서 날마다 기도하시며 성경을 외우시던 어머니의 아들이셨기에 어려서부터 믿음이 흘러내려온 가정이었다. 못나서 처가 신세를 많이 지고 살아온 변변치 못한 자신을 생각하며 속 깊은 어른을 부모로 모실 수 있었던 지난 날을 감사한다.
가끔 아내와 농담으로 “처가 덕을 보는 사람도 많던데…” 하면 “아내는 당신이야말로 처가 덕을 얼마나 많이 본 사람인데 그런 소리 하시우” 한다. “뭘 봤는데?”하고 물으면, “아니 이런 딸을 데려가구서도 덕을 안 봤다고 해요?” 하는 대답에 아무 말도 못하곤 한다. 따지고 보면 데려다가 목회 한다고 갖은 고생 다 시켰고 오지 않겠다던 미국까지 데려와 참 고생을 많이 시키고 있다. 그러니 참으로 할 말이 없다. 어른은 참으로 복이 많으신 분이다. 셋째를 제외하고 다섯 남매가 모두 모여 와서 임종을 지켜 보았고 많은 그들이 다 가정을 이루었으니 그 식구들이며 직장과 교회 식구들 그리고 친척들로 영결예배는 서울에서부터 속초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축제 분위기와 같았다고 전하며 아내는 전화에서 이렇게 말하며 만족해 했다.
“아버지가 완전히 꽃 속에서 파묻혀 가셨어요. 그리고 엄마와 합장을 했어요.” 그리고 며칠 후 아내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어제 형제 자매들이 다 모여 회의를 했는데 모든 일들이 잘 처리되었고 모두가 행복해 했어요.” 어른의 가족이 하나가 되어 사랑 받은 것을 깊이 감사한다. 또한 주님 앞에 다시 만날 날을 바라보며 어른의 생애와 삶을 주님께 감사드린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그 때까지 함께 계심 바라네…”(아멘)
댓글목록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헌금과 십일조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수있는
좋은 글 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온전한 십일조가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는 요즘에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글 감사합니다. 꼭 물질적인 것으로만 믿음의 유'무와 깊이를 판가름하는 현실의 모양들이 너무너무 인본적이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의 작은 신음까지도 아시고 도우시리라 믿으며 진정한 믿음의 십일조에 대해 더 깊히 묵상하렵니다


성경공부 

